미지와 실재 사이 : 경락이란 무엇인가?

지난 글에서 저는 경락을 감정과 신체가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지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경락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동양의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인체 안에서 기와 혈이 흐르고, 몸의 안과 밖, 장부와 조직을 서로 연결하는 통로를 경락이라고 설명합니다.

금오 김홍경 선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경락은 의식과 감정의 통로”라는 관점에서 경락을 바라보았습니다.

저에게도 경락은 단순히 침을 놓기 위해 외우고 있는 선이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공부한다는 것

처음 침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꽤 혼란스러웠습니다.

동양의학의 진단과 치료에는 음양오행, 장부, 경락이라는 거대한 논리 구조가 있었습니다. 침을 배우려면 경혈을 알아야 하고, 경혈을 이해하려면 경락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에서 막혔습니다.

경락은 도대체 무엇인가?

해부학 책을 펼쳐도 경락이라는 구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저는 아직 충분한 임상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답답했습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이 체계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환원주의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불편함을 이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경락에 관한 논문을 찾아보고, 봉한학설도 공부하고, 경락을 현대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려는 여러 연구를 찾아 읽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물리학자 소광섭 교수의 연구도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북한의 김봉한이 1960년대 제안했던 봉한계통을 현대적인 실험 방법으로 다시 연구했고, 이후 이를 Primo Vascular System, PVS라고 부르며 그 구조와 기능을 탐구했습니다.

흥미로운 연구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우리가 말하는 경락의 실체가 발견되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경락은 여전히 현대 해부학에서 명확한 구조로 확인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8년 병리학자 Neil Theise와 연구진이 interstitium을 발표했을 때 동양의학계가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제게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한 것은 기존의 병리 슬라이드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몸 전체에 이어져 있는 체액으로 채워진 공간과 결합조직의 망상 구조였습니다. 기존의 조직 처리 과정에서는 체액이 빠지면서 이 공간이 무너져, 우리가 익숙한 현미경 슬라이드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동양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듣고 자연스럽게 경락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수천 년 동안 경락 역시 눈에 보이는 혈관이나 신경처럼 하나의 관으로 설명된 것이 아니라, 몸의 안과 밖을 연결하고 서로 떨어져 있는 부분들이 관계를 맺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interstitium이 발표된 이후, 이것이 경락 현상을 이해하는 해부학적 기반이 될 수 있는지 질문하는 연구와 논의도 이어졌습니다.

물론 interstitium이 곧 경락이라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둘을 같은 것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흥미롭게 느낀 것은 다른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존의 관찰 방법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그물 같은 공간이 다른 방법으로 바라보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갔습니다.

경락은 무엇일까?
우리가 아직 그것을 볼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경락은 임상을 시작하면서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이상하게도 경락은 책을 더 많이 읽었을 때보다 환자를 보기 시작하면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환자와 대화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몸을 만지고, 맥을 보고, 경혈을 찾고, 침을 놓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목이 아프다고 찾아온 사람이 소화가 좋지 않았고, 오래된 불안과 수면 문제가 있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이 흔들릴 때마다 아주 비슷한 부위의 몸이 긴장하거나 피부가 뒤집어졌습니다.

그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제가 책에서 외웠던 경락의 선들은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던 그물이 임상 안에서 관계의 형태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경락이라는 해부학적 관을 눈으로 발견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에게 경락은 그보다 조금 다른 의미의 실재입니다.

한 사람의 몸과 감정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읽기 위해 사용하는 지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경락을 볼 때 아픈 곳만 보지 않습니다.

왜 이곳이 아픈가?
이 통증은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가?
몸의 다른 변화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의 감정과 삶의 이야기는 이 몸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을 함께 봅니다.

어쩌면 경락은 저에게 답이라기보다 질문하는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Meridian Therapy의 출발점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경락치료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우리는 반드시 아픈 곳에 침을 놓지 않아도 되는가.

같은 바늘을 사용하지만 침 치료와 dry needling은 무엇이 다른지, shockwave 같은 국소적인 기계 자극과 경락치료는 무엇이 다른지도 함께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결국 그 차이는 바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바늘을 놓기 전에, 한 사람을 어떤 지도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참고문헌

Benias, P. C., Wells, R. G., Sackey-Aboagye, B., Klavan, H., Reidy, J., Buonocore, D., Miranda, M., Kornacki, S., Wayne, M., Carr-Locke, D. L., & Theise, N. D. (2018). Structure and distribution of an unrecognized interstitium in human tissues. Scientific Reports, 8, Article 4947. https://doi.org/10.1038/s41598-018-23062-6

Soh, K.-S. (2009). Bonghan circulatory system as an extension of acupuncture meridians. Journal of Acupuncture and Meridian Studies, 2(2), 93–106. https://doi.org/10.1016/S2005-2901(09)60041-8

Soh, K.-S., Kang, K. A., & Ryu, Y. H. (2013). 50 years of Bong-Han theory and 10 years of primo vascular system. Evidence-Based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2013, Article 587827. https://doi.org/10.1155/2013/587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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