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을 때

장요근에서 이상근까지, 감정과 트라우마 그리고 몸의 보호 반사

갑자기 무서운 일을 겪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가빠지고, 어깨와 배에 힘이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몸이 굳고, 어떤 사람은 다리에 힘이 풀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너무 놀라서 몸이 얼어붙었어”,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공포는 마음에서 느끼는 감정이지만, 몸도 함께 경험합니다.

요즘에는 “트라우마가 몸에 저장된다”는 표현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정말 감정이나 기억이 특정 근육 안에 저장되는 걸까요?

저는 조금 다르게 질문해보고 싶습니다.

위험은 이미 끝났는데 신경계가 아직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몸은 얼마나 오래 긴장을 유지할까요?

이 질문에서 장요근과 이상근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장요근, 도망갈 준비를 하는 근육

장요근은 허리 깊은 곳에서 시작해 골반을 지나 허벅지뼈까지 연결됩니다. 걷고 뛰고 다리를 들어 올리고 몸을 안정시키는 데 중요한 근육입니다.

그래서 소마틱 테라피나 웰니스 분야에서는 장요근을 종종 ‘공포의 근육’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공포가 장요근에 저장된다”고 말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위험을 느꼈을 때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공포를 느끼면 우리 몸은 즉시 살아남을 준비를 합니다. 심장이 빨라지고 호흡이 달라지며 근육에는 힘이 들어갑니다.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때로는 몸을 굳혀 자신을 보호합니다.

원래는 위험이 지나가면 이런 반응도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사건은 끝났는데 몸이 긴장을 놓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사건은 끝났지만 몸은 아직 경계하고 있을 때

이것은 트라우마와 PTSD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무서운 기억을 잊지 못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위험과 관련된 소리나 냄새, 장소, 움직임, 때로는 작은 신체 감각에도 신경계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건은 이미 끝났지만 몸은 아직 “조심해야 해”라고 말하고 있는 상태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근육도 계속 몸을 보호하려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몸이 필요 이상으로 오랫동안 우리를 지키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상근 통증도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까?

한의원에서 엉덩이 깊숙한 곳의 통증으로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치료해 봤는데 계속 아파요.”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 안쪽이 너무 불편해요.”
“허리도 아니고 다리도 아닌데 깊은 곳이 계속 아파요.”

이상근은 골반 깊숙한 곳에서 천골과 대퇴골을 연결하는 근육입니다. 주변으로 좌골신경이 지나가기 때문에 이 부위와 관련된 문제는 엉덩이뿐 아니라 다리 쪽 증상과 함께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곧바로 이상근 통증을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골반 주변 근육 역시 우리 몸의 나머지 부분과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통증을 예상하거나 몸이 계속 경계하는 상태에서는 움직임과 근육 사용 패턴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PTSD 증상이 있는 여성에서 골반저근 활동 증가가 관찰되었고, 특히 과각성(hyperarousal)과 관련성이 보고된 연구도 있습니다.

따라서 “공포가 골반이나 이상근에 저장된다”고 말하기보다는,

“신경계의 보호 반응이 몸의 긴장과 움직임에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2천 년 전에도 ‘풀리지 않는 공포’를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서 동양의학의 오래된 문장을 하나 떠올려봅니다.

《황제내경·영추·본신》에는 공포와 관련하여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恐懼而不解則傷精

“공포와 두려움이 풀리지 않으면 정(精)을 상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不解(불해), 즉 ‘풀리지 않는다’는 표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보다 그 공포가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2천 년 전의 한의학 개념을 현대의 PTSD나 신경생리학과 동일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두 관점을 나란히 놓아보면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현대의학에서는 묻습니다.

“위험이 끝났는데도 신경계가 계속 위험하다고 판단한다면 몸에는 어떤 변화가 지속될까?”

그리고 오래전 동양의학에서는 말했습니다.

恐懼而不解 — 공포가 풀리지 않는다면.

시대도, 의학의 언어도 전혀 다르지만 해소되지 않은 두려움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오래전부터 고민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통증을 볼 때 근육만 볼 것인가

오래된 근육통을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습니다.

“어느 근육이 뭉쳤을까?”

“어디를 풀어야 할까?”

물론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하나를 더 물어볼 수 있습니다.

“왜 이 몸은 아직도 이렇게 힘을 주고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 걸까?”

오랫동안 지속되는 통증은 근육 하나만의 문제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경계, 수면, 스트레스, 과거의 통증 경험, 움직임에 대한 두려움과 여러 신체적 요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회복 역시 단순히 뻣뻣한 근육을 ‘풀어주는 것’보다 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 자고, 편안하게 호흡하고, 안전하게 움직이고, 조금씩 몸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 것.

오랫동안 긴장해 있던 몸이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감각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조금 힘을 빼도 괜찮다.”

몸이 그 감각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

그것 역시 통증에서 회복되는 과정의 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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